[책과 길] ‘풍경과 마음’…한폭 산수화,동서양 美學을 읽다 <국민일보200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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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시]:2003-10-30 오후 4:12:52
[책과 길] ‘풍경과 마음’…한폭 산수화,동서양 美學을 읽다
‘동양의 그림과 이상향에 대한 명상’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은 성찰적 혹은 심미적 이성주의자로 말해지는 비평가 김우창(66·고려대 명예교수)씨의 ‘미학 에세이’다. 그는 특유의 아르고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눈이 달린 괴물)의 시각으로 동서양의 그림과 정신세계의 특질,사유 전통 등의 영역을 종횡하면서 두 문화의 혼재로 뒤엉켜버린 현대인의 심미안적 감각에 비판적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실감의 세계(마음)와 실재의 세계(풍경)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풍경의 뒤틀림이 클수록 나침반의 역할은 빛난다. 첫 장 ‘감각과 세계’는 총론적 성격의 글이며 ‘풍경과 선험적 구성’은 조선시대 그림을 통해 시각 체계의 반영인 그림과 이상향에 관한 인식 간의 관련을,‘동양적 전통과 평정한 마음’은 동양화를 통해 발견하는 자아의 태도의 문제를 각각 거론하고 있다.
#감각과 세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 중에서 시각은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보는 것은 세상을 발견하는 능력과 관련된다. 이 글은 인간의 ‘시각체험’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회화,즉 그림을 통해 인간이 보는 것과 인간이 물리적으로 살고 있는 삶과의 관계를 추적하고 있다. “그림은 그 자체로 독립된 대상물이고 세계이지만,그것이 그림 밖의 것들을 가리키는 바가 없다면,그 매력은 상당히 줄어들 것임에 틀림없다.”
이 명제는 그림이란 작가가 실물을 바라보는 세상을 그림의 감상자 역시 똑같이 경험할 수 있으며,어떻게 바라보고,그것이 어떻게 화면에 담기는가에 따라 그림으로 옮겨지는 것 이상의 ‘무엇’을 읽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실물을 그대로 화면에 사생(寫生)하는 서양화가와 실물을 화면에 사의(寫意)하는 동양화가의 ‘관점’의 차이가 무엇인가. 저자는 ‘동양화와 서양화는 왜 느낌이 다른가’,‘서양화는 근경,중경,원경이라는 원근법이 명확히 드러나는 데 비해 왜 동양화는 원근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걸까’ 등의 의문을 제기한 뒤 “그것은 삶의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해답을 제시한다.
#풍경과 선험적 구성
유교적 이상국가의 꿈이 좌절된 조선조의 풍수사상은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의 반영이었다. 이때 풍수사상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추상적인 이념의 체계라기보다는 매우 구체적인 ‘땅’에 대한 인간 체험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정선(鄭敾)의 ‘금강전도’를 예시하고 있다. ‘금강전도’에서 표현된 풍경은 더 이상 사생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선은 실제로 바라본 금강산을 화폭에 옮긴 것이 아니라 기억의 과정을 거쳐 회상의 의미에서 금강산을 그려냈다. 이러한 회상의 과정에는 동시대인들이 지향한 공통의 이상향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금강산에 실제로 일만 이천봉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만 이천이라는 우수리 없는 정수 표시 자체가 지적인 구도가 현실과 일치한다는 의미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강전도’의 산모양이 신화적으로 양식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산의 영향력은 한편으로 동해바다의 부상에 따른,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전체에,세계의 바깥에서 그 안에까지 미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금강전도’야말로 감각과 지리학의 밑바닥에 들어 있는 세계의 형이상학적 구도를 함축하는 인위적인 구성물이라고 강조한다.
#동양적 전통과 평정한 마음
꽃 피고,나무가 있고,닭 울음이 들리는 동양의 산수화가 주는 안정감은 결국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평정한 마음으로 연결된다. 동양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세계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룬 것을 이상으로 보았다. 이는 서양사람들이 이성적·과학적 원칙과 공학적인 기술을 통해 재정비된 상태를 이상적인 것으로 본 것과 구별된다.
“옛날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그림을 늘 걸어놓고 감상하는 게 아니라 두루마리로 말아놓았다가 가끔 끄집어내어 보고는 도로 제자리에 집어넣곤 했습니다. 마치 시집에서 시를 감상하고 나서 책을 덮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그림은 고리짝에 넣어두지만 그림의 산을 머릿속에 지니고 다니는 것입니다. 가끔 꺼내어 보는 것은 기억을 새로이 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이 동양화를그린 의도는 정신수련의 한 방식이자 무엇보다도 생활의 한 방식이었다. 유토피아를 잃어버린 옛 사람들이 시시때때 꺼내보며 마음을 닦았던 동양화. 그것은 마음의 불화를 건너가는 화평의 다리가 아니었을까(김우창·생각의나무).
정철훈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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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시]:2003-10-30 오후 4:12:52
[책과 길] ‘풍경과 마음’…한폭 산수화,동서양 美學을 읽다
‘동양의 그림과 이상향에 대한 명상’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은 성찰적 혹은 심미적 이성주의자로 말해지는 비평가 김우창(66·고려대 명예교수)씨의 ‘미학 에세이’다. 그는 특유의 아르고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눈이 달린 괴물)의 시각으로 동서양의 그림과 정신세계의 특질,사유 전통 등의 영역을 종횡하면서 두 문화의 혼재로 뒤엉켜버린 현대인의 심미안적 감각에 비판적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실감의 세계(마음)와 실재의 세계(풍경)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풍경의 뒤틀림이 클수록 나침반의 역할은 빛난다. 첫 장 ‘감각과 세계’는 총론적 성격의 글이며 ‘풍경과 선험적 구성’은 조선시대 그림을 통해 시각 체계의 반영인 그림과 이상향에 관한 인식 간의 관련을,‘동양적 전통과 평정한 마음’은 동양화를 통해 발견하는 자아의 태도의 문제를 각각 거론하고 있다.
#감각과 세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 중에서 시각은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보는 것은 세상을 발견하는 능력과 관련된다. 이 글은 인간의 ‘시각체험’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회화,즉 그림을 통해 인간이 보는 것과 인간이 물리적으로 살고 있는 삶과의 관계를 추적하고 있다. “그림은 그 자체로 독립된 대상물이고 세계이지만,그것이 그림 밖의 것들을 가리키는 바가 없다면,그 매력은 상당히 줄어들 것임에 틀림없다.”
이 명제는 그림이란 작가가 실물을 바라보는 세상을 그림의 감상자 역시 똑같이 경험할 수 있으며,어떻게 바라보고,그것이 어떻게 화면에 담기는가에 따라 그림으로 옮겨지는 것 이상의 ‘무엇’을 읽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실물을 그대로 화면에 사생(寫生)하는 서양화가와 실물을 화면에 사의(寫意)하는 동양화가의 ‘관점’의 차이가 무엇인가. 저자는 ‘동양화와 서양화는 왜 느낌이 다른가’,‘서양화는 근경,중경,원경이라는 원근법이 명확히 드러나는 데 비해 왜 동양화는 원근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걸까’ 등의 의문을 제기한 뒤 “그것은 삶의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해답을 제시한다.
#풍경과 선험적 구성
유교적 이상국가의 꿈이 좌절된 조선조의 풍수사상은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의 반영이었다. 이때 풍수사상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추상적인 이념의 체계라기보다는 매우 구체적인 ‘땅’에 대한 인간 체험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정선(鄭敾)의 ‘금강전도’를 예시하고 있다. ‘금강전도’에서 표현된 풍경은 더 이상 사생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선은 실제로 바라본 금강산을 화폭에 옮긴 것이 아니라 기억의 과정을 거쳐 회상의 의미에서 금강산을 그려냈다. 이러한 회상의 과정에는 동시대인들이 지향한 공통의 이상향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금강산에 실제로 일만 이천봉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만 이천이라는 우수리 없는 정수 표시 자체가 지적인 구도가 현실과 일치한다는 의미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강전도’의 산모양이 신화적으로 양식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산의 영향력은 한편으로 동해바다의 부상에 따른,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전체에,세계의 바깥에서 그 안에까지 미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금강전도’야말로 감각과 지리학의 밑바닥에 들어 있는 세계의 형이상학적 구도를 함축하는 인위적인 구성물이라고 강조한다.
#동양적 전통과 평정한 마음
꽃 피고,나무가 있고,닭 울음이 들리는 동양의 산수화가 주는 안정감은 결국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평정한 마음으로 연결된다. 동양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세계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룬 것을 이상으로 보았다. 이는 서양사람들이 이성적·과학적 원칙과 공학적인 기술을 통해 재정비된 상태를 이상적인 것으로 본 것과 구별된다.
“옛날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그림을 늘 걸어놓고 감상하는 게 아니라 두루마리로 말아놓았다가 가끔 끄집어내어 보고는 도로 제자리에 집어넣곤 했습니다. 마치 시집에서 시를 감상하고 나서 책을 덮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그림은 고리짝에 넣어두지만 그림의 산을 머릿속에 지니고 다니는 것입니다. 가끔 꺼내어 보는 것은 기억을 새로이 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이 동양화를그린 의도는 정신수련의 한 방식이자 무엇보다도 생활의 한 방식이었다. 유토피아를 잃어버린 옛 사람들이 시시때때 꺼내보며 마음을 닦았던 동양화. 그것은 마음의 불화를 건너가는 화평의 다리가 아니었을까(김우창·생각의나무).
정철훈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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