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의 개비 (광주 남구)
정종환 · 2003.12.17 · 조회 30
위 치 : 광주 남구 양림동 157-1
http://kwangju-jung.pe.kr/user/sertable_output.php?code=214
개 요 : 광주시내 남구 양림동에 양촌(楊村) <1558년 명종 13년(무오년)에
문과 급제>의 효행 정려가 있으며 정려 앞에 석상이 있다. 여기를
양림동 일대 주민들은 속칭 개비라고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약 4백년 전(명종, 선조 연간)에 한양 천리를 달려
조정에까지 주인의 심부름을 하였던 충견의 석상이 세워져 있기 때
문이다.
양림 오거리에서 사직공원 쪽으로 50m 지점 내에 있는 이 개비는
광주 정씨인 양촌이 자신이 길렀던 명견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 개는 양촌이 써 주는 상소문이나 조정에 보내는 각종
문서를 보자기에 싸서 목에 걸고 가 전달하는 심부름을, 사람 이상
으로 해냈다고 한다. 양촌은 개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 전대에 엽전
을 따로 넣어서 목에 걸어 주며 한양까지 가고 오는 길에 밥을 사
먹도록 했는데, 이 개는 주막집 아낙이 주는 밥을 먹고도 돈을 너
무 많이 가져가면 주막집에서 떠나지 않는 등 상상하기 어려울 만
큼 영특했다고 한다. 이 때는 교통이나 통신수단이 불편하여 비둘기
발목에 쪽지를 매달아 편지를 띄우기도 하고 또 말을 타고 가도 10
일 이상이나 걸렸다. 따라서 이 개의 간단한 서신 심부름은 시간과
경비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조정을 드나들며 주인의 심부름을 충실하게 해오던 개는 집
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전주 부근의 강변 다리밑에서 새끼 9마리를
낳고 한마리씩 집으로 물어 나르다가 9번째 마지막 새끼를 물어오면
서 그만 지쳐 길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양촌은 애견이 새끼를 낳
을 때가 된 것도 모르고 심부름을 보냈다가 죽게 되자 개의 모양을
한 석상을 세우고 충견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
이 석상은 양촌공이 죽은 뒤, 후손들이 그의 정려 앞에 세웠다.
석상의 크기 : 넓이 1.8㎡ 길이 80cm
정보제공자 : 광주 남구청 정보홍보실 문화관광팀 이 건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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