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매화축제 (축제기간 2004년 03월 13일 ~ 21일)
정종환 · 2004.02.11 · 조회 37
정설 할아버지의 유적지인 섬진마을에서 매화축제가 있습니다.부대행사로 수월정 종이배 띄우기가 있습니다.수월정 설명중 정첩이라고 되어 있네요.족보나 문과방목에는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정설 할아버지의 증손인 정시수,현손인 정교 할아버지의 호구단자및 준호구단자 그리고 또 한장의 호구단자를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준호구단자에는 거느리고 있는 노비가 수십명이나 나옵니다.광양지방에서 상당히 지체 높은 양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월정과 수월정유허비 사진
광양 매화축제
수월정에 대한 설명은 다압소개에 섬진마을,문화유적지,관광지 이렇게 3곳에 나옵니다.
섬진마을
ㅇ.도사리는 고려 또는 그전에는 다사천 또는 다사촌이라 하였다. 1789년쯤에는 내군도리와 다사촌 지역이었다. 왜정시대인 1913년까지는 군도(群道)리, 섬진리,다사리라 하였고 동시대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거 이 지역을 도사리라 하고 도사리내 섬진,다사마을을 두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ㅇ.섬진마을은 1789년쯤에 다압면에 속하였는데 언제부터 섬진이라 하였는지 사료에 확실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군도, 파동, 진동, 지막동이 합병된 마을로 1685년쯤 김해김씨가 처음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옛날섬진은 광양과 하동을 건너가는 가장큰 나룻터였으며 섬진을 통하여 진상면 섬거역과 다압면 신원리 원동의 섬진원이 경남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의 다사역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였으나 광양과 하동사이에 다리가 가설되면서 나루터가 쇠퇴하여 도선이 중단 되었다.
5m가량의 바위가 두꺼비 헤염치는 모습을 하고 있어 나루터란 말에 두꺼비 섬자을 넣었다는 것이다. 다른하나는 두꺼비가 보은을 하는 전설에 기초한다. 옛날에 한처녀가 나루터에서 홍수에 떠내려가는 두꺼비를 구해주었는데 후에 그처녀가 물에빠져 곤경에 처하자 두꺼비가 처녀를 구한후 힘에지쳐 그 언덕밑에서 숨졌다고 한다. 그뒤 이 두꺼비의 아름다운 행실을 기리는 뜻에서 이곳을 섬진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ㅇ. 이마을에는 두꺼비 일화가 두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임진왜란때 왜군이 침입하여 하동에서 광양으로 건너오려하자 수많은 두꺼비가 섬진나루에 몰려들어 왜병들이 강을 건너는 것을 방해하는 바람에 결국은 건너지 못하고 광양이 병화를 피할 수 있었다 한다. 또하나는 고려말 혹은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쳐들어오는데 우리군사들이 쫓겨서 섬진나루에 이르러 보니 건너야 할나루배가 없어 곤경에 처하였다. 그때 두꺼비 수백마리가 강에서 떠올라 다리를 놓아주어 우리군사들이 다 건너가고 나니 왜병들이 몰려왔다. 그때 두꺼비들이 그들을 등에 태운채 모두 강물속에 들어가 버려 왜병들이 빠져죽었다고 하여, 이로 인하여 두치강이라 불렀던 것을 두꺼비강이라 해서 섬진강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다.
ㅇ. 수월정 : 다압면 섬진강변에 있었다. 이조 선조때 전남 나주목사를 지낸 정첩이 만년을 보냈던 곳이다. 뒤에 이곳으로귀양살이온 송강 정철이 수월정기를 썻다. 이 고장을 무대로 지은시 30수 가운데 2수가 송강집에 수록되어 있고 강수온집에는 전편이 수록되어 있다. 도사리 135-2번지에 수월정유허비가 남아있다.
ㅇ. 수월정 유허비 : 나주목사를 지냈던 정첩이 그부친 정옥천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일명 정옥천유허비 라고도 한다. 지금의 유허비는 1971년 7월 정첩후손들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다. 수월정 유허비 주변에는 네 개의 돌거북이 있다. 이것은 섬진에 옛날 어느별장이 부임한뒤 이 지역의 산세가 두꺼비 형국임을 감안하여 기념비의 좌대로 만든 것이라한다. 월래는 17개였는데 나머지는 유실되었다. 실제로는 돌두꺼비의 별장 기념비 좌대인지 수얼정 유허비 기단인지 알수없다.
ㅇ. 섬진진지 : 다압면 도사리 섬진마을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하동과 연결되는 가장큰 규모의 교통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진상면에는 섬거역이 있었고, 다압 신원리에는 관영숙소인 섬진원이 있어 섬진나루는 그 당시 교통요충지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옛날 관영나루터에는 병사1명씩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선초기 부터는 섬진에는 군인이 배치되었겠지만 기록상 이런사실이 나타나는 것은 임진왜란 때이다. 호남진지에 의하면 처음 군인을 배치한 사람은 충무공이며, 섬진의 건너쪽인 두치에도 조방장을 두어 이 길목을 지키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휘양지에 의하면 임진왜란전인 1573년에 통영에서 이곳에 도청을 개설하고 군인을 뽑기시작하였다고 하나 이 무렵은 아직 통영제도가 없었던 때이므로 어딘가 착오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정식으로 수군진을 둔 것은 1705년 으로 이곳에 8품급 별장을 두었으며 1730년대에는 종6품급을 둔적도 있었다. 섬진진에는 성이 축조되지는 않았으나 서해관이란 집무청 및 창고6채와 위사등 8채의 집이 있었다. 병선으로는 방선2척, 사후선2척등 4척이 있었다. 당시의 주둔군은 358명 내외였으며 진 주변에는 민가 88호가 있었다.(휘양지의 기록으로서 어느때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상의 기록에 유의하여 현지를 살펴보면 우선 별장들의 공접비를 세웠던 비의좌대 4기가 눈에 뜨인다. 서해관자리는 도사리 121번지 박덕균씨의 집터로 변해있다. 박씨는 그의 할아버지가 이곳수군으로 있다가 1895년 진이 없어지면서 경남 통영사람들이 위사등을 뜯어갈 때 서까래등을 주워모아 지금의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옥터,군량터,진둔지등의 이름과 선화당터,당산등 옛이름이 남아있다. 박씨가 어렸을 때인 왜정시대만 해도 이 나루터에 12기의 비가 있었으나 일제때 돌보는 이가 없어 주민들이 뽑아다 다른 용도로 써 버렸다고 한다.한말까지는 124명이 승선할 수 있는 대병선이 정박했다는 이 나루터는 오늘날 수량이 줄고 퇴적이 심해 겨우 2-3톤급 나룻배도 장대질로 건너다닐 수 있게 변했다.
ㅇ.율산 김오천옹과 광양밤 : 율산 김오천 옹은 1902년 11월 21일 농부 김용술씨의 아들로 태어나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호구가 어려워 8살 때 남의집 머슴살이를 했던 그는 17세되던 1918년 머슴살이하던 품값으로 마련한 여비로 일본을 건너가는 연락선을 탔다. 일본ㄱ주 복강현에서 13냔간 광부생활로 돈을 모아 밤나무와 매실나무 묘목 5,000주를 구입1931년 귀국 수백정보의 산을 구입 밤산을 만들어 이괒ㅇ의 밤,매실재배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동안 끼친공로에 의하여 1965년 산업훈장을 받았으며, 1972년 11월 그 의 가까운 제자들의 주선으로 본시관계외 각계인사들이 뜻을모아 마을앞에다 비를 세우고 옹의 생애에 가장어울리는 율산이라고 아호를 바쳐 옹의 입적을 기리었다.
마을의 특정적인 지명
ㅇ.가장골 : 지막동 북쪽에 있는 들
ㅇ. 감남골 : 부엄디미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감나무가 많이 있었다.
ㅇ. 느랭이 : 사동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지세가 느러져 밋밋하다.
ㅇ. 당목 : 섬진에서 신원리 외압으로 가는 고개, 서낭당이 있었다.
ㅇ. 대릿골 : 지막과 사동사이에 있는 골짜기.
ㅇ. 뒷골 : 지막동 뒤쪽에 있는 골짜기와 섬진뒷쪽에 있는 들.
ㅇ. 사장터 : 지막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
ㅇ. 선돌 : 섬진동쪽에 있는 바위로 전에는 여기에다 배를 매었다.
ㅇ. 선창 : 전에 선창이었던 마을.
ㅇ. 동헌터 : 섬진복판에 있던 있는 터로 섬진별장터라고도 부른다.
ㅇ. 장구목 : 사동에서 느랭이로 가는 장구처럼 잘룩한 고개.
ㅇ. 쫒비산 : 용무정 서남쪽에 있는 산.
ㅇ.칠인평 : 섬진나루 남쪽에 잇는 들,신원리 칠인정이 위쪽이 된다. 꿩이 알을 품은 형국이어서 치 란평(雉卵坪)이라고도 한다.
ㅇ.사동 : 마을 형국이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사동(巳洞)이라 하였음. 주민들이 흉한 형국이라 하여 한번 쓸어 버려야 마을이 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옴.
ㅇ.지막동 : 매화마을을 가르킴.
ㅇ.진동 : 나루터가 있었던 마을. 또는 섬진진이란 수군 병영이 있었다하여 불리어진 이름이다.
ㅇ.원돌팍 : 나루터에 있는 바위군에 위치하는데 옛날 빨래터가 있는곳.
ㅇ.당산나무 : 진동마을 입구에 있으며 수령이 약 300백년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거의 고사상태이며, 마을 주민들이 명절이 되면 이곳에서 당산제를 지내며 집안에 흉길사가 있을 때 당산나무제를 지낸다.
축제명 : 광양 매화축제
종 류 : 지역/특산물 축제
일 시 : 2004년 03월 13일 ~ 21일
장 소 :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 등
백운산과 지리산 계곡사이로 흐르는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눈속에서 꽃이 핀다는 사군자중의 하나인 매화꽃을 소재로한 매화축제는 섬진강변 매화마을(섬진마을) 일원에서 해마다 3월 중순에 열리는 전국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개최하는 꽃 축제이다.
광양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율산 김오천 옹이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시작한 매화의 고장으로서, 개나리 진달래 보다 먼저 봄소식을 알려주는 매화와,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더해가는 매실제품 및 각종 지역특산품, 섬진강변의 빼어난 풍경등을 한데 묶어 관광자원화 하여, 관광 광양 의 이미지를 높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코자 기획되었다.
축제의 유래 및 특징
- 1997년 시작된 매화축제는 전국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매실과 매실로 만든 매실식품을 널리 알리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시작하여 전국의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특히 섬진강에 인접한 백운산 동편자락 10만여평에 군락을 이룬 매화단지와 섬진강 풍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내어 찾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 또한 섬진강의 지명유래가 된 두꺼비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섬진나루터와 청매실농원의 전통옹기, 그리고 섬진강 재첩잡이 풍경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강변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예정 행사
KBS전국노래자랑, 길이 500m, 너비 3m의 세계최대 매화 화폭담기(그리기), 섬진마을-청매실농원 3㎞에서 펼쳐지는 매화축제 로드쇼(길놀음) 등이
길놀음 행사, 매화판화 찍기, 매화토우 만들기, 매화부채 만들기, 매화 꽃종이 접기, 매화 민속경기. 매화가족사진 콘테스트, 매화 솟대세우기 등 행사
부대행사 - 수월정 종이배 띄우기. 광양.구례.하동(경남) 특산품 판매, 민속 유품자료 전시, 목각공예체험 등이 열리며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국제매실학술 심포지엄과 매실세계화의 밤 등 문화공연행사
모듬북 공연, 매화사생대회, 고 김오천(청매실농원 창립자)옹 추모제, 고적대 퍼레이드, 전남-경남 어린이 친구 맺기, 중국 기예단 공연, 기념식, 불꽃놀이, 전국사진 촬영대회, 버꾸놀이 공연, 다도 시연 등 행사
주변 관광지
느랭이골자연휴양림, 금천계곡, 어치계곡,망덕포구
섬진강변 먹거리
금천가든 061) 772-4925 돈박골횟집 772-7222
매화골횟집 772-3433 솥밭횟집 772-3247
염창가든 772-2588 제일가든 772-4427
청해진 772-4925
매화마을 민박
김충길 772-3937 오세균 772-3044
박경조 772-0146 조상현 772-0003
박계수 772-1898 조용병 772-3823
박석기 772-4029 청매실농원 772-4066
배한태 772-5606 황인규 772-3749
교통편
<자가용>
◆ 전주 ⇒ 남원 ⇒ 구례 ⇒ 간전교 ⇒ 다압 ⇒ 매화마을, 섬진교(행사장)
◆ 광주 ⇒ 순천 ⇒ 광양옥곡IC ⇒ 매화마을, 섬진교(행사장)
◆ 부산 ⇒ 진주 ⇒ 하동IC ⇒ 하동읍 ⇒ 매화마을, 섬진교(행사장)
<기차편>
◆ 서울발 23:50 ⇒ 익일 06:04 하동도착(무궁화호)
◆ 부산발 09:35 ⇒ 13:00 하동도착(무궁화호)
<비행기편>
◆ 서울 ⇒ 여수공항 (1일 12편)
◆ 서울 ⇒ 진주공항 (1일 8편)
문의처
주소 : 광양시 중동 1313번지
다압면 청년회 : 061-772-9988
다압면 사무소 : 061-797-2607
광양시 문화홍보실 : 061-797-2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