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월호] 내고장인물-도학명문의 산실 양림동과 광주 정씨 <2002.01>
정종환 · 2004.02.12 · 조회 17
출처 남구웹진
중종실록 필진으로 광주의 빛이 되었던 `정만종\'
동명의 연원이 되는 곳이자
도학명문(道學明門)의 산실인
양림동 이장우 가옥에서 출생
조선시대 정만종은 광주정씨로 양림동 민속자료 1호(이장우가옥)에서 태어났다.
이 터는 무려 아홉 등과자가 나와 세칭 `9홍패 터\'라 한다. 광주정씨 33인의 등과자 중 아홉, 광주만이 아닌 널리 알려진 길지에서 아니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무등산을 조망하며 그렸던 뚜렷한 사관을 핀 그는 죽어서도 그 산록 무량동 선영아래 묻혀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 묻힌 진정한 광주인으로 정평이 나 정감사자리에 실전된 시조를 그의 묘역 위에 설단하여 광주정문의 연원과 유래가 바로 광주 양림임을 간접시사해 주는 듯하다.
`광주읍지\' 성씨편에 `탁(卓),이(李), 김(金), 채(蔡), 노(盧), 장(張), 정(鄭) 등 광산(광주)이 `본\'이고, 광주정씨 시조 정신호(鄭臣扈)는 재학편에 `광산인이니 벼슬은 찬성이다\'라 되어 있는 광주정문을 약보하면 윤부(允孚), 윤형(允亨)은 시조 아들로 윤부는 개성부윤, 나주체찰사, 윤형은 형조참의, 인진(鱗晋), 구진(龜晋)은 윤부 아들로 완백공(完伯公), 동백공(東伯公)파로 나뉜다. 인진은 삼사를 거쳐 전라감사, 구진(동백공)은 태종 때 문과로 강원감사, 이조참의를 지냈다.
정만종의 자는 인보(仁甫), 호는 棗溪(조계)다. 중종 별시문과 갑과 3인으로 예괴원 주서, 사가호당, 정연, 지평, 장령, 흥문관직제학, 형조참판, 이조참판, 명나라 장성황후 붕서 진위사, 명종 대에 이르기까지 7도관찰사를 거쳐 동지춘추관사로 `중종실록\'의 편찬진이 되었다.
정만종은 눌재 박상(訥齋 朴祥)의 문인으로 `광주읍지`에 `정만종은 구징의 현손으로 중종 병자년 문과 급제, 에조판서, 7도관찰사, 호는 조계. 눌재 박상이 중하는 시에 해내에 그대같이 쾌활한 선비없어 평생에 한 사람 몫을 사양하여 두었도다`라 할만큼 촉망받았다.
`왕조실록\' 중종 32년 5월 19일 시강관으로 석강에 나가 왕에게 강한 내용을 요약하면 `한 문제가 위양 오제묘를 짓고 신원평을 상대부로 삼은 것을 사설(邪說)에 현혹된 것인데 삼대(무제, 소제, 선제)에 고명한 문제까지 그 요술에 교사(郊祀), 오치 등을 거리낌없이 행하였다\'고 하면서 `그때는 참된 선비가 없어 아무리 명철한 임금이라도 간혼 요술에 오도`되었다 하면서 `우리나라 소격서, 태을전 등의 유에 해당된다\'라 할만큼 시론이 정연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종 33년 3월 춘당대에서 왕이 신하들에게 출제한 시제로 김안국이 수석 말 1필, 정만종이 차석으로 아마를 하사받아 문장이라 칭송을 받기도 하였던 인물이다.
조계 정만종선생이 태어난 양림동 터는 동명의 연원이 되는 곳이자 도학명문(道學明門)의 산실이요, 강명청직(剛明淸直)하다는 광주정문의 대명사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