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호] 義의 光州, 우리 남구가 왜 孝鄕인가 <남구웹진 2002.12>
정종환 · 2004.02.12 · 조회 19
義의 光州, 우리 남구가 왜 孝鄕인가
효는 조상과 부모와 국가의 근본을 되찾는 도화선
효란 무엇인가. 이번호부터 쓰고자 하오니 많은 충고와 고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어버이와 조상을 섬기는 것은 자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다.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그래서 효자효부, 열녀, 충신열사가 나면 고을 사람들이 칭송하고, 조정에서 그 가문, 그 고을까지 포상하여 우러르게 하였다. 그러나 불효나 불충하는 자가 나오면 그 가문은 말할것도 없이 그 고을까지 징벌하였는데, 세종 때 光州는 목사가 城主였다. 그런데 노홍준이란 자가 목사 신보안을 구타한 일로 무진군, 숙종 27년 무고죄인 淑貞의 관향이라 하여 광산현으로 강등시켰다고 좥광주읍지좦에 있다.
그만큼 우리민족은 孝를 근본으로 삼았다. 효는 위 아래의 유지로 수평적 사회속에 질서가 되고, 관청에서는 품계로 지휘체계외 위계질서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국가에 충으로 이어지는 근원이 바로 이 효에서 나오기 때문에 효자 등에게 나라에서 정문, 복호, 서용 등으로 포상하였다.
왜 효를 본으로 삼았는가. 조선왕조실록 태종 12년 8월 16일에 사간원이 `신 등이 듣건대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하는 까닭에 충성을 임금에게 옮길 수 있는데 예로부터 충신을 효자의 문에서 구한다 하였으니, 불효하고도 충성한 자는 아직 있지 아니합니다. 이하 생략’라 하는 조목과, 중종 23년 8월 12일에는 `효행과 節義는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와 큰 관게가 있는 것이다.’라 하는 사록으로 보아 효는 충이요, 불효는 불충이다. 효와 불효가 충과 불충으로 대별되어진다. 즉 자신의 부모에게 잘 못하면 남의 부모나 나라와 임금에게 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 충신, 의사, 열사, 효자, 열부 등이 많았다. 그러니까 외침을 받아 삶의 신성한 터전과 자신과 민족의 존엄성이 짓밟힌 전란이었기 때문에 나왔다고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날은 전란의 시대가 아니어서 효와 충이 불필요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월드컵 때 대한민국이라 열광하였던가. 과연 우리는 자신을 낳은 자신의 부모와 조상은 나라에 어떠한 존재였고 오늘날 자신은 지역사회와 나라에 어떠한 존재인가 반문해 보자.
우리 민족이 이땅에 존재하면서 조상과 자손으로 연계되었다. 비단 우리 민족만이 아니다. 전 세계 인류, 어느 민족이던간에 다 혈통은 그대로 존속되어지고 있다.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다. 그런데 `효와 충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폄하시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다.
조상과 자신과 미래의 자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영원을 갈구함이다. 그래서 이 忠孝의 글을 쓰면서 상당히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첨단과학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사건을 분석하려면 DNA, 즉 혈통으로 형성되어는 뼈에서 찾아내고 있다. 그래서 `뼈대가 있는 집안’이란 옛말이 피속에 흐르는 원인자는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첨단과학보다 더 무서운 말이다. 말을 바꾸자면 밭이 다르다고 종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봄이면 씨봉을 달고 날아다니는 민들레도 변함없이 민들레 꽃을 피우듯 말이다.
우리 민족정신은 자존이다. 물론 각기 다른 민족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왜 우리 민족사관과 정신사관은 흔들리는걸까. 시냇가에 버드나무는 이른봄부터 싹을 틔워 푸르고 푸르다가 서리 눈 맞고 잎이 지고도 계속 바람에 흔들리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 실가지는 곧게 드리워지는 것과 같이 우리의 전통사관도 더 오롯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義鄕 광주의 남구에는 효자효부, 열녀, 충신의 정문이 많은 유서깊은 곳이다. 義의 분화구가 되었던 남구를 孝鄕으로 하는 것은 조상과 부모와 나라와 민족의 근본을 되찾자는 쾌거다.
<김용휴 향토사가, 시인 전 언론인, 한국문협
효는 조상과 부모와 국가의 근본을 되찾는 도화선
효란 무엇인가. 이번호부터 쓰고자 하오니 많은 충고와 고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어버이와 조상을 섬기는 것은 자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다.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그래서 효자효부, 열녀, 충신열사가 나면 고을 사람들이 칭송하고, 조정에서 그 가문, 그 고을까지 포상하여 우러르게 하였다. 그러나 불효나 불충하는 자가 나오면 그 가문은 말할것도 없이 그 고을까지 징벌하였는데, 세종 때 光州는 목사가 城主였다. 그런데 노홍준이란 자가 목사 신보안을 구타한 일로 무진군, 숙종 27년 무고죄인 淑貞의 관향이라 하여 광산현으로 강등시켰다고 좥광주읍지좦에 있다.
그만큼 우리민족은 孝를 근본으로 삼았다. 효는 위 아래의 유지로 수평적 사회속에 질서가 되고, 관청에서는 품계로 지휘체계외 위계질서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국가에 충으로 이어지는 근원이 바로 이 효에서 나오기 때문에 효자 등에게 나라에서 정문, 복호, 서용 등으로 포상하였다.
왜 효를 본으로 삼았는가. 조선왕조실록 태종 12년 8월 16일에 사간원이 `신 등이 듣건대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하는 까닭에 충성을 임금에게 옮길 수 있는데 예로부터 충신을 효자의 문에서 구한다 하였으니, 불효하고도 충성한 자는 아직 있지 아니합니다. 이하 생략’라 하는 조목과, 중종 23년 8월 12일에는 `효행과 節義는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와 큰 관게가 있는 것이다.’라 하는 사록으로 보아 효는 충이요, 불효는 불충이다. 효와 불효가 충과 불충으로 대별되어진다. 즉 자신의 부모에게 잘 못하면 남의 부모나 나라와 임금에게 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 충신, 의사, 열사, 효자, 열부 등이 많았다. 그러니까 외침을 받아 삶의 신성한 터전과 자신과 민족의 존엄성이 짓밟힌 전란이었기 때문에 나왔다고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날은 전란의 시대가 아니어서 효와 충이 불필요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월드컵 때 대한민국이라 열광하였던가. 과연 우리는 자신을 낳은 자신의 부모와 조상은 나라에 어떠한 존재였고 오늘날 자신은 지역사회와 나라에 어떠한 존재인가 반문해 보자.
우리 민족이 이땅에 존재하면서 조상과 자손으로 연계되었다. 비단 우리 민족만이 아니다. 전 세계 인류, 어느 민족이던간에 다 혈통은 그대로 존속되어지고 있다.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다. 그런데 `효와 충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폄하시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다.
조상과 자신과 미래의 자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영원을 갈구함이다. 그래서 이 忠孝의 글을 쓰면서 상당히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첨단과학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사건을 분석하려면 DNA, 즉 혈통으로 형성되어는 뼈에서 찾아내고 있다. 그래서 `뼈대가 있는 집안’이란 옛말이 피속에 흐르는 원인자는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첨단과학보다 더 무서운 말이다. 말을 바꾸자면 밭이 다르다고 종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봄이면 씨봉을 달고 날아다니는 민들레도 변함없이 민들레 꽃을 피우듯 말이다.
우리 민족정신은 자존이다. 물론 각기 다른 민족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왜 우리 민족사관과 정신사관은 흔들리는걸까. 시냇가에 버드나무는 이른봄부터 싹을 틔워 푸르고 푸르다가 서리 눈 맞고 잎이 지고도 계속 바람에 흔들리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 실가지는 곧게 드리워지는 것과 같이 우리의 전통사관도 더 오롯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義鄕 광주의 남구에는 효자효부, 열녀, 충신의 정문이 많은 유서깊은 곳이다. 義의 분화구가 되었던 남구를 孝鄕으로 하는 것은 조상과 부모와 나라와 민족의 근본을 되찾자는 쾌거다.
<김용휴 향토사가, 시인 전 언론인, 한국문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