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정씨인터넷족보
- 01세 신호臣扈

직계 계도 直系系圖

본인 · 01세
臣扈신호

대동보 내용 大同譜

字(자) 
號(호) 
생년월일 
졸년월일 
배우자 정보咸陽朴氏함양박씨
배우자
생년월일
 
배우자
졸년월일
 
자녀 정보2남 2녀
자녀 상세○女여安文彦안문언女여鄭義정의判尹판윤
○女여高靈申德隣고령신덕린號호醇隱순은判書판서子자申包翅신포시參判참판

묘소·사진

신호 신호 신호 신호

약력 略歷

高麗고려忠宣충선忠肅之際충숙지제(충숙왕대 즈음)官관三重大匡삼중대광 門下贊成事문하찬성사 判版圖司事판판도사사 上護軍상호군 或云혹운(혹은 …이라 하기도 한다)奉恩寺眞殿直봉은사진전직 追封추봉(돌아가신 뒤에 벼슬을 올림)三重大匡삼중대광門下贊成事문하찬성사 按안(살펴보건대)申企齋光漢文集신기재광한문집 其기外姑외고(장모)鄭夫人정부인墓誌文묘지문曰왈鄭정大族也대족야高麗고려贊成事찬성사諱휘 臣扈之後也신호지후야(∼의 후손이라)鄭夫人정부인卽즉郡守군수 ●之女절지녀 於公어공六世孫也6세손야去古未遠거고미원(멀지않은 옛일이라)必有傳信系譜필유전신계보(틀림없이 전신 계보가 있었을 것)而이以贊成稱職이찬성칭직(벼슬을 찬성이라 했으니)則즉或云혹운殿直전직或未然혹미연(어쩌면 그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墓묘光州광주東距동거十里許10리허鷹鳴洞응명동巽坐손좌 云운而未尋이미심(찾지 못하다)
○ 配배咸陽朴氏함양박씨父부祭器都監判官제기도감판관 淳순 祖조軍器少監군기소감 之文지문曾祖증조吏部尙書이부상서 臣似신유禮部尙書예부상서 善선七世孫7세손外祖외조議郞의랑 延日鄭潤연일정윤
○墓묘羅州나주南門外남문외興龍洞흥룡동云운而未尋이미심
○二男二女 2남2녀
○子자允孚윤부允亨윤형
○女여安文彦안문언女여鄭義정의判尹판윤
○女여高靈申德隣고령신덕린號호醇隱순은判書판서子자申包翅신포시參判참판
○1979年년設설慕先壇모선단與여二世2세諱휘允孚윤부諱휘允亨윤형三位삼위于우光州市광주시東區동구雲林洞운림동六世6세允績윤적七世7세萬鍾만종宗中종중墓묘上嶝상등

주석 註釋

  1. 문관의 품계. 충렬왕 34년(1308) 정1품으로 정하고 공민왕 18년에는 종從1품의 상上으로 고쳤는데 문하찬성사, 판판도사사가 공민왕 21년(1372) 개정 이후의 것이니 종1품 상으로 생각된다.
  2. 문하부의 가장 높은 직위. 문하부는 모든 정사를 총괄하던 관청이었으며 찬성사는 흔히 정2품으로 보하였다.
  3. 판도사라는 관청의 가장 높은 직위인 판사를 ‘판-판도사-사’라 한 것. 판도사는 조선시대의 호조戶曹에 해당한다. 그 판사는 종1품으로 보하였다.
  4. 무관직의 가장 높은 자리. 정3품이나 무관에는 2품이상 관직이 따로 없다.
  5. 고려 관제에 나타나지 않는 특수직. 봉은사는 고려 서울 개성에 있던 나라절로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진영眞影을 모시어 진전이었으며 그 ‘진전직’은 왕실과 특별한 관계에 있던 사람의 보직이었던 듯하다.
  6. 신광한申光漢(1484∼1555) 호號 기재企齋. 고령신숙주高靈申叔舟의 손자로 대제학. 신덕린의 5대손이고 시조의 외 6대손이 된다. 그의 문집이 ≪기재집≫. 묘지문墓誌文. ☞ 참고1
  7. ∼지녀∼之女는 ∼의 딸. 절嗚은 6세.
  8. 24방위가 있는데 손巽은 정동正東과 정남正南 사이 한가운데.
  9. 제기의 공급을 맡아보던 관청의 벼슬 5-6품.
  10. 병기의 영조營造를 맡아보던 관청 군기시軍器寺의 감監 다음 벼슬. 4-5품.
  11. 문관의 선임選任, 훈봉勳封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 이부의 장관.
  12. 예부의 장관.
  13. 선부選部 민부民部 등의 정4품 벼슬.
  14. 한성부의 장. 정2품.
  15. 육조의 판서 다음 벼슬. 종2품.
← 이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