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세사료 先世史料
역사 사료(三國史記·三國遺事·東國輿地勝覽·高麗史 등)에 나타난 광주정씨에 관한 기록 모음입니다.
선세사료›谿谷漫筆 (계곡만필)
谿谷漫筆 (계곡만필)
谿谷漫筆계곡만필
谿谷漫筆계곡만필
張維장유
趙持世(承旨)曰조지세(승지)왈栗谷율곡入山時입산시或云落髮혹운낙발或云否也혹운부야嘗以問于沙溪상이문우사계沙溪言사계언似是落髮사시낙발而惟金南窓玄成이유김남창현성力卞其不然曰역변기부연왈栗谷下山一二年율곡하산일이년爲應擧入洛위응거입락往省之時왕성지시栗谷율곡已有盛名이유성명賓客滿座빈객만좌栗谷율곡對衆梳頭髮대중소두발長委地장위지乃至立梳내지입소長髮之人장발지인於數年之間어수년지간決不若是長也결불약시장야其不曾落髮明矣기부증낙발명의鄭以周亦言정이주역언栗谷初出山육곡초출산與之同宿여지동숙●大如拳계대여권世傳其剃髮妄也세전기체발망야蓋沙溪개사계雖親登栗谷之門수친등율곡지문嚴不敢請問入山時事엄불감청문입산시사只聞世俗流傳지문세속유전而以爲信然이이위신연金鄭二公김정이공皆與栗谷交友개여율곡교우目擊其狀목격기상而言之이언지二公이공皆非妄言者개비망언자其言可信矣기언가신의夫부栗谷業已入山율곡업이입산則其落髮與否즉기락발여부只是祖跡지시조적有不足多辨유부족다변然世傳之非實연세전지비실則金鄭二公之言즉김정이공지언足以爲證矣족이위증의
계곡만필谿谷漫筆
장유張維
조지세趙持世(승지承旨)가
말하기를 “율곡이 입산했을 때에 혹은 머리를 깎았다 하고 혹은 아니라고 한다. 일찌기 사계沙溪에게
물으니 사계가 말하기를 ‘낙발落髮했던 것 같다’ 고 하였는데 김남창金南窓
현성玄成이 그렇지 않음을 극력 변명하여 말하기를 ‘율곡이 산에서
내려온 지 1, 2년 후에 과거에 응시하려고 서울로 들어왔기에 가 보니 이때 율곡은 이미 장한 이름이 있어
빈객이 만좌하였었다. 이때 율곡이 여러 사람들 보는 데서 머리를 빗고 있었는데, 미리 길이가 땅에 끌리어
일어서서 빗기에 이르렀으니 머리 깎았다가 기른 사람이라면 수년 동안에 결코 이같이 길 수는 없는 것이니
낙발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하였고 정이주鄭以周도
또한 말하기를, ‘율곡이 처음 산에서 나왔을 때 함께 잠을 잤는데 상투琦의
크기가 주먹 같았으니 세상에서 전하는 낙발설은 헛된 말이다’ 하였는데 대개 사계는 비록 친히 율곡 문하에서
배웠으나 엄하여 감히 입산 때의 일을 물어보지 못하고 다만 세속에서 유전流傳되는
말을 듣고 그렇게 믿은 것이었고, 김ㆍ정 두분은 모두 율곡과 더불어 사귄 벗으로서 그 형상을 목격하고 말한
것이었고 또 두 분이 모두 망언할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 말이 가히 믿을 만하다’
하였다. 대저 율곡은 이미 입산入山하였었고 그 낙발 여부는 한낱
겉 형식에 불과한 것이니 족히 변명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세상에서 전하는 말은 사실이 아니고 김ㆍ정
두분의 말이 족히 증거가 되는 것이다.
-출처 <谿谷漫筆계곡만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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谿谷漫筆계곡만필
張維장유
趙持世(承旨)曰조지세(승지)왈栗谷율곡入山時입산시或云落髮혹운낙발或云否也혹운부야嘗以問于沙溪상이문우사계沙溪言사계언似是落髮사시낙발而惟金南窓玄成이유김남창현성力卞其不然曰역변기부연왈栗谷下山一二年율곡하산일이년爲應擧入洛위응거입락往省之時왕성지시栗谷율곡已有盛名이유성명賓客滿座빈객만좌栗谷율곡對衆梳頭髮대중소두발長委地장위지乃至立梳내지입소長髮之人장발지인於數年之間어수년지간決不若是長也결불약시장야其不曾落髮明矣기부증낙발명의鄭以周亦言정이주역언栗谷初出山육곡초출산與之同宿여지동숙●大如拳계대여권世傳其剃髮妄也세전기체발망야蓋沙溪개사계雖親登栗谷之門수친등율곡지문嚴不敢請問入山時事엄불감청문입산시사只聞世俗流傳지문세속유전而以爲信然이이위신연金鄭二公김정이공皆與栗谷交友개여율곡교우目擊其狀목격기상而言之이언지二公이공皆非妄言者개비망언자其言可信矣기언가신의夫부栗谷業已入山율곡업이입산則其落髮與否즉기락발여부只是祖跡지시조적有不足多辨유부족다변然世傳之非實연세전지비실則金鄭二公之言즉김정이공지언足以爲證矣족이위증의
계곡만필谿谷漫筆
장유張維
조지세趙持世(승지承旨)가
말하기를 “율곡이 입산했을 때에 혹은 머리를 깎았다 하고 혹은 아니라고 한다. 일찌기 사계沙溪에게
물으니 사계가 말하기를 ‘낙발落髮했던 것 같다’ 고 하였는데 김남창金南窓
현성玄成이 그렇지 않음을 극력 변명하여 말하기를 ‘율곡이 산에서
내려온 지 1, 2년 후에 과거에 응시하려고 서울로 들어왔기에 가 보니 이때 율곡은 이미 장한 이름이 있어
빈객이 만좌하였었다. 이때 율곡이 여러 사람들 보는 데서 머리를 빗고 있었는데, 미리 길이가 땅에 끌리어
일어서서 빗기에 이르렀으니 머리 깎았다가 기른 사람이라면 수년 동안에 결코 이같이 길 수는 없는 것이니
낙발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하였고 정이주鄭以周도
또한 말하기를, ‘율곡이 처음 산에서 나왔을 때 함께 잠을 잤는데 상투琦의
크기가 주먹 같았으니 세상에서 전하는 낙발설은 헛된 말이다’ 하였는데 대개 사계는 비록 친히 율곡 문하에서
배웠으나 엄하여 감히 입산 때의 일을 물어보지 못하고 다만 세속에서 유전流傳되는
말을 듣고 그렇게 믿은 것이었고, 김ㆍ정 두분은 모두 율곡과 더불어 사귄 벗으로서 그 형상을 목격하고 말한
것이었고 또 두 분이 모두 망언할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 말이 가히 믿을 만하다’
하였다. 대저 율곡은 이미 입산入山하였었고 그 낙발 여부는 한낱
겉 형식에 불과한 것이니 족히 변명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세상에서 전하는 말은 사실이 아니고 김ㆍ정
두분의 말이 족히 증거가 되는 것이다.
-출처 <谿谷漫筆계곡만필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