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정씨인터넷족보

선세사료 先世史料

역사 사료(三國史記·三國遺事·東國輿地勝覽·高麗史 등)에 나타난 광주정씨에 관한 기록 모음입니다.

선세사료光山縣 (광산현)

光山縣 (광산현)

光山縣광산현
光山縣광산현
東至동지
昌平縣界창평현계 十八里18리
南至남지 和順縣界화순현계二十一里
21리 至지 南平縣界남평현계
二十八里28리 西至서지 羅州界나주계
四十七里 47리 北至북지 珍原縣界진원현계
二十一里21리 距거 京都경도
···
建置沿革건치연혁 本본 百濟백제
武珍州무진주 (一云일운 奴只노지)
新羅신라 取취 百濟백제
仍置잉치 都督도독 景德王경덕왕
十六年16년 改개 武州무주
眞聖王진성왕 六年6년 甄萱견훤
襲據습거 稱칭 後百濟후백제
尋심 移都이도 全州전주
弓裔궁예 以高麗太祖이고려태조
爲위 精騎太監정기태감 師솔
舟師주사 略定약정 州界주계
城主성주 池萱지훤 以甄萱壻이견훤서
堅守不降견수불항 至지 太祖태조
十九年19년 討토 神劒신검
滅之멸지 二十三年23년
改개光州광주
(今금 按안 高麗史고려사 天復천복 三年3년 弓裔궁예 命명 太祖태조 率솔 舟師주사 自西海자서해 抵저 光州界광주계
攻공 錦城금성 取之취지 開平개평 三年3년 又우 使太祖사태조 修戰艦수전함 往擊왕격 光州광주 珍島郡진도군 取之취지
後후 又우 至光州지광주 西南界서남계 潘南縣반남현 浦口포구 獲획 壓海縣압해현 水賊수적 能昌능창 送于裔송우예
太祖태조 卽位十九年즉위19년 親征친정 神劒신검 駐營馬城주영마성 神劒신검 與其弟여기제 菁州城主청주성주 良劒양검
光州城主광주성주 龍劒용검 來降내항 則즉 武之稱光무지칭광 自甄萱時자견훤시 而然이연 非始於太祖비시어태조 二十三年23년
或疑혹의 高麗고려 史臣사신 追稱之辭추칭지사 然연 自餘州縣자여주현 皆據개거 當時之號당시지호 而書之이서지 何獨於光州乎하독어광주호
意者의자 甄萱以後견훤이후 光武互稱광무호칭 至지 是年시년 定爲光州也정위광주야 姑俟知者고사지자)
成宗성종 十五年15년 降爲刺史강위자사
後후 又降우강 爲海陽縣令위해양현령
高宗고종 四十六年46년 以功臣이공신
金仁俊김인준 外鄕외향 陞승
知翼州事지익주사 後후 陞승
爲武珍州위무진주 忠宣王충선왕
二年2년 降爲化平府강위화평부
恭愍王공민왕
十一年11년 改개 茂珍府무진부
(避피 惠宗諱혜종휘 改개 武爲茂무위무) 二十二年22년
復稱복칭 光州광주
爲牧위목 本朝因之본조인지 世宗세종
十二年12년 邑人읍인 盧興俊노흥준
歐구 牧使목사 辛保安신보안
杖장 興俊흥준 徙邊사변
降爲茂珍郡강위무진군 文宗문종
元年원년 復舊복구
成宗성종 二十年20년
判官판관 禹允功우윤공 中중
流矢유시 朝廷조정 疑의
邑人所爲읍인소위降강 爲縣위현
改개 今名금명
官員관원
縣監현감 訓導훈도 (各각一人1인)
新增신증 燕山연산
七年7년 復爲州복위주 官員관원
牧使목사 判官판관 (各각
一人1인)
郡名군명 武珍무진 武州무주
光州광주 海陽해양 翼州익주
化平화평 茂珍무진 翼陽익양
瑞石서석
人物인물 高麗고려
: 鄭世雲정세운 從종 恭愍王공민왕
入元입원 ……※(高麗史고려사
列傳열전) 本朝본조
鄭龜晋정구진 擢탁 第二人제2인
及第급제 累官누관
刑曹參議형조참의 江原道觀察使강원도관찰사
광산현光山縣
동쪽으로
창평현昌平縣 경계까지 18리 남쪽으로 화순현和順縣
경계까지 21리 남평현南平縣 경계까지 28리이고 서쪽으로 나주羅州
경계까지 47리 북쪽으로 진원현珍原縣 경계까지 21리이다.
건치연혁建置沿革 본래
백제의 무진주武珍州인데 일명 노지奴只라고도
한다. 신라가 백제를 빼앗아 그대로 도독都督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
16년에 무주武州로 고치고 진성왕眞聖王
6년에 견훤甄萱이 습격하여 의거하고 후백제後百濟라
칭하다가 이윽고 전주全州로 도읍을 옮겼다. 궁예弓裔가
고려 태조를 정기태감精騎太監으로 삼으니 태조는 해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
경계를 정했으나 성주城主 지훤池萱은
견훤의 사위로서 굳게 성을 지키고 항복하지 않았다. 태조 19년에
이르러 신검神劒을 쳐서 멸망시키고 23년에
광주光州라
고쳤다 (지금 고려사를 상고하건대 천복天復 3년에 궁예가 태조에게 명하여 수군을
거느리고 서해로부터 광주 경계로 가서 금성錦城을 쳐서 빼앗게 했다. 개평開平 3년에 또 태조를 시켜서 전함을
수리해 가지고 광주와 진도군珍島郡을 쳐서 빼앗게 했다. 뒤에 또 광주 서남쪽 반남현潘南縣 포구浦口에 이르러
압해현壓海縣 수적水賊 능창能昌을 잡아 궁예에게 보냈다. 태조 즉위 19년 친히 신검神劒을 칠 적에 영마성營馬城에
주둔하니 신검은 그의 아우 청주성주菁州城主 양검良劒과 광주성주光州城主 용검龍劒과 함께 와서 투항하였다고
하였으니 무주武州를 광주光州라고 부른 것은 견훤 때부터요 태조 23년에 비로소 광주라 칭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고려의 사신史臣이 추후에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주현州縣은 모두
당시의 이름으로 기록했는데 홀로 광주만 그렇게 기록했을 것인가. 생각하건대 견훤이 후에 광주라 하고 무주라
하여 다 함께 불렀다가 이 해 태조 23년에 이르러 광주로 정한 것인가 한다. 정확히 아는 사람을 기다린다.)
성종成宗 15년에 강등하여 자사刺史가
되고 후에 또 강등하여 해양현령海陽縣令이 되었다. 고종 46년 공신
김인준金仁俊의 외가의 고향이므로 승격하여 익주지사翼州知事가
되고 후에 또 승격하여 무진주武珍州가 되었다. 충선왕 2년에 강등하여
화평부化平府가 되고 공민왕
11년에 무진부茂珍府라
개칭했다. (혜종惠宗의 휘諱를 피해서 무武자를 무茂자로 고쳤다.)
22년 다시 광주라 칭하고 목牧을
삼았고 본조에 와서도 그대로 따랐다.
세종 12년에 그 고을 사람 노흥준盧興俊이
목사牧使 신보안辛保安을 때렸으므로
노흥준을 장형杖刑에 처하여 변방으로 쫓아 보내고 강등하여 무진군茂珍郡이
되었다.
문종 원년에 옛대로 복구되었다.
성종 20년에 판관判官 우윤공禹允功이
흐르는 화살에 맞았는데 조정에서는 그 고을 사람의 행위인가 의심해서 강등하여 현을 만들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관원:현감·훈도
각 1명이다. 신증
:연산군 7년에 다시 주州가 되었다. 관원:목사·판관
각 1명이다.
군명郡名 무진武珍 무주武州
광주光州 해양海陽 익주翼州
화평化平 무진茂珍 익양翼陽
서석瑞石
인물人物 고려高麗
: 정세운鄭世雲 공민왕恭愍王을
따라 원元에 가서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본조本朝
: 정구진鄭龜晋 둘째번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이 여러번 올라가
형조참의刑曹參議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가 되었다.
-출처 <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승람> 卷之三十五권지35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