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정씨인터넷족보

선세사료 先世史料

역사 사료(三國史記·三國遺事·東國輿地勝覽·高麗史 등)에 나타난 광주정씨에 관한 기록 모음입니다.

선세사료鄭世雲 (정세운)

鄭世雲 (정세운)

鄭世雲정세운
鄭世雲정세운
光州광주 長澤縣人장택현인
從恭愍종공민 入元입원 宿衛숙위
累官누관 大護軍대호군 王卽位왕즉위
錄其功녹기공 爲一等위1등
與金鏞여김용有寵於王유총어왕
楊廣道按廉양광도안렴 金南得김남득
笞辱태욕 忽赤홀적中郞將중랑장
鄭谷정곡 谷곡 同僚동료
權石和等권석화등 訴於王소어왕
世雲세운 鏞與南得善용여남득선
請王청왕 杖流장류 石和等于海島석화등우해도
又與鏞우여용 忌기 密直副使밀직부사
任君輔임군보 有寵유총 ●以詐참이사
傳王旨전왕지 流濟州유제주
歷역 軍簿判書군부판서 知門下省事지문하성사
錄녹 誅奇轍功주기철공 爲一等위1등
八年8년 紅賊홍적 陷西京함서경
以世雲이세운 爲西北面都巡察使위서북면도순찰사
自黃州자황주 還言환언 賊적
入西京입서경 積柴修城적시수성
無進逼計무진핍계 願勿驚擾원물경요
以安衆心이안중심 轉전 參知政事참지정사
倭寇왜구 楊廣道양광도 京城경성
戒嚴계엄 令百官從軍영백관종군
諫官간관 詣王宮辭예왕궁사
世雲曰세운왈 諫官從軍간관종군
古所未聞고소미문 如國體何여국체하
命免之명면지 十年10년 紅賊홍적
陷京城함경성 王幸福州왕행복주
世雲세운 以樞密兼鷹揚軍上將軍이추밀겸응양군상장군
從行종행 性忠淸성충청 日夜憂憤일야우분
以掃賊恢復이소적회복自任자임王왕
亦倚信역의신 世雲세운屢請●下哀痛之敎누청극하애통지교以慰民心이위민심遣使견사督諸道兵독제도병討賊토적
王왕 遂以世雲수이세운 爲摠兵官위총병관
敎曰교왈 天下安천하안注意相주의상天下危천하위注意將주의장惟時與勢유의여세輕重在人경중재인可不愼哉가불신재恭惟太祖공유태조肇創鴻業조창홍업列聖相承열성상승休養生民휴양생민逮于寡人체우과인
●于宴安뉴우연안軍旅之事군려지사廢而不講폐이불강以致紅賊이치홍적侵犯침범播越而南파월이남每念宗社매념종사痛楚何堪통초하감今금分遣諸將분견제장合兵攻賊합병공적乃授鄭世雲내수정세운節鉞절월往董厥師왕동궐사賞罰상벌用命용명不用命불용명其各處軍官기각처군관軍人군인敢有故●감유고요節制절제及隔越급격월馳聞者치문자聽以軍法청이군법從事종사於戱어희師出以律사출이률有國之所當先유국지소당선國耳忘家국이망가爲臣之所當急위신지소당급惟爾士衆유이사중體予至懷체여지회世雲세운詣都堂예도당憤然揚言曰분연양언왈吾甚寒徵오심한징如吾爲相여오위상國家宜亂국가의란竹嶺以南居人죽령이남거인扈駕者호가자不給糧幷從事불급량병종사此議已定차의이정今何不然금하불연紀綱乃爾기강내이安能制難안능제난謂위柳淑曰유숙왈吾오明日出師명일출사公其往簽軍공기왕첨군淑曰숙왈諸軍제군已到竹嶺이도죽령大院矣대원의世雲曰세운왈軍若後期군양후기公亦不得免責공역부득면책淑숙卽往督之득왕독지又우謂鏞曰위용왈今금兩相琓寇如此양상완구여차淑不效耶숙불효야若不殲賊약불섬적縱竄匿종찬닉山谷산곡可得而生가득이생可得而國乎가득이국호守侍中수시중李●曰이암왈今寇賊
人금구적난인君臣播遷군신파천爲天下之笑위천하지소三韓之恥삼한지치而公이공首倡大義수창대의仗鉞行師장월행사社稷之再安사직지재안王業之中興왕업지중흥在此一擧재차일거惟公勉之유공면지吾君臣오군신日夜일야望망公之凱還也공지개환야
世雲세운 行행 擢授탁수
中書平章事중서평장사 位위
二相이상 三宰之間삼재지간
王왕 ●遣達赤견오달적 權天祐권천우
賜衣酒사의주 世雲세운 附奏曰부주왈
諸將有報제장유보獲賊者획적자
勿先論賞물선논상 臣雖捕獲신수포획
不敢數馳報불감삭치보 以煩驛騎이번역기
大戰之後대전지후 具狀上聞구장상문
西京人서경인 高敬고경 至軍前지군전
言언 府民부민 脫賊者탈적자
無慮萬人무려만인 請청 遣將鎭撫견장진무
世雲세운 大悅대열 遣견
禮部尙書예부상서 李珣이순
往撫之왕무지 督赴京城독부경성
十一年십일년 世雲세운 督諸將독제장
圍京城위경성 自退屯자퇴둔
兜率院두솔원 賊平적평 遣견
大將軍대장군 金漢貴김한귀中郞將중랑장
金景김경奉봉 露布노포
詣行在曰예행재왈 嘗軫상진
濟世之心제세지심 旁求俊彦방구준언
敬承경승 分●之命분곤지명
恐累聖明공루성명 竊聞절문
興衰有數흥쇠유수 理亂無窮이란무궁
安民之要안민지요 禦寇爲難어구위난
大王대왕 去●거빈
未能防狄人之逼미능방적인지핍 明皇幸蜀명황행촉
不得制●狗之侵부득제갈구지침 掃赤眉소적미
而劉漢重興이유한중흥 破黃巾파황건
而曹魏繼統이조위계통 悉惟時軍실유시군
匪獨人爲비독인위 當去歲之仲冬당겨세지중동
値滔天之勍敵치도천지경적 論其肆毒논기사독
雖豺虎之莫如수시호지막여 觀其行兵관기행병
亦孫吳之難抗역손오지난항 日將自恣일장자자
世無誰何세무수하 乘勝長驅승승장구
旣橫行於天下기횡행어천하 遠引直入원인직입
遂大振於海東수대진어해동 怒鋒不可當노봉불가당
望風皆自潰망풍개자궤 百萬精甲백만정갑
奄屯住於都城엄둔주어도성 億兆斯民억조사민
蕩流離於道路탕유리어도로 嗟哉黎烝차재여증
甚於塗炭심어도탄 況乘輿之遠狩항승여지원수
實將相之深憂실장상지심우 肆擧雲合之兵사거운합지병
遂攻蟻聚之虜수공의취지로 士卒得建●之勢사졸득건령지노
赴敵何難부적하난 頑●완은
爲破竹之魂위파죽지혼 迎刃輒解영인첩해
制天下제천하 所不能制소불능제
誅一世주일세 所不能誅소불능주
魚可息於鼎中어가식어정중 免難脫於網外면난탈어망외
田單一奇전단일기 何足法 葛亮八陣 可爲師가위사
凌雪入城능설입성 李●이소
取蔡州之地취채주지지 背水爲陣배수위진
韓信 拔趙壁之旗발조벽지기 事雖不同사수부동
義則允合의즉윤합 昔석 蒐兵於己亥수병어기해
曾증 掃賊하족법한갈량팔진신於朝鮮소적어조선
再克寇侵之强재극구침지강 皆개
非비 臣等之績신등지적 玆盖伏遇殿下자개복우전하
勇智天錫용지천석 聖敬日 성경일제
遠播休風원파휴풍 遵禮樂於三代준예악어삼대
誕敷文德탄부문덕 舞干羽于兩階무간우우양계
梟●之所以馴효경지소이순
犬羊之所以伏태양지소이복 無不關於聖化무불관어성화
亦역 皆개 於至仁유어지인
理之自然이지자연 否則復泰부즉부태
斯乃重興之際사내중흥지제 實是更始之初실시갱시지초
臣等신등 敢不競奮감불경분
鷹揚之勇응양지용 致치 淸明於會朝청명어회조
載伸재신 鰲●之誠오변지성
佇瞻望於行在저첨망어행재 王喜왕희
賜漢貴사한귀 黃金황금 二十五兩이십오량帛백二匹이필
景경 帛백二匹이필
卽遣즉견 內詹事내섬사 李大豆里이대두리
賜사 世雲세운 衣酒의주
太后태후 公主공주 亦역
賜사 衣酒의주 尋爲安祐等所害심위안우등소해
洪彦博聞其死曰홍언박문기사왈 摠兵之出師也총병지출사야
言貌甚●언모심오
其及宜矣기급의의 贈증 僉議政丞첨의정승
葬以禮장이례 又우 追錄扈從及收復之功추록호종급수복지공
俱爲一等구위일등
정세운鄭世雲
광주光州
장택현인長澤縣人이니 공민왕恭愍王을
좇아 원元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하였으며
벼슬을 거듭하여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왕이 즉위하매 그 功을
기록하여 1등一等을 삼았고 김용金鏞과
함께 王의 총애가 있었다. 양광도안렴楊廣道按廉
김남득金南得이 홀적忽赤 중랑장中郞將
정곡鄭谷을 매쳐 욕되게 하거늘 동료同僚
권석화權石和 등等이 왕에게
호소하니 세운世雲과 용鏞이
남득南得과 친선하므로 왕에게 청하여 석화石和
등等을 매쳐 해도海島에 귀양보내고
또 용鏞으로 더불어 밀직부사密直副使
임군보任君輔가 왕에게 총애 있음을 시기하여 참소하여 거짓으로 왕의
뜻을 전하여 제주濟州에 귀양보냈다.군부판서軍簿判書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지냈고 기철奇轍을
벤 공을 기록하여 1등을 삼았다. 8년에 홍적紅賊이 서경西京을
함락하거늘 세운世雲으로 서북면도순찰사西北面都巡察使를
삼으니 황주黃州로부터 돌아와 말하기를 “적이 서경西京에
들어가서 나무를 쌓고 성을 수선하고 나와 핍박할 계획이 없으니 원컨대 놀라 요란하지 말아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케 하소서”라고 하였다. 참지청사參知政事가 되었는데 왜倭가
양광도楊廣道를 침략하매 서울에 계엄戒嚴하여
백관으로 하여금 종군從軍케 하니 간관諫官이
왕궁王宮에 나아가서 하직하거늘 세운世雲이
말하기를 “간관諫官이 종군從軍함은
옛적에 듣지 못한 바이라 나라 체모에 어찌하리요”하니 명命하여 면하게
하였다. 10년에 홍적紅賊이 서울을 함락하매 왕이 복주福州에
행차하는데 세운世雲이 추밀樞密로서
응양군상장군鷹揚軍上將軍을 겸하여 좇아 행할 새 성품이 충성하고 청백하여
밤낮으로 근심하고 분개하여서 적을 소탕하여 회복하기를 스스로 맡으니 왕도 역시 의지하고 믿었다. 세운世雲이
여러번 청하기를 빨리 애통한 조서를 내려 민심을 위로하고 사신을 보내어 제도諸道의
군사를 독촉하여 적을 치게 하소서 하니 왕이 드디어 세운世雲으로써
총병관摠兵官을 삼고 교敎하기를
“‘천하가 편하면 재상宰相에게 뜻을 붙이고 천하가 위태하면 장수에게
뜻을 붙인다’ 하였으니 오직 때와 대세는 경중이 사람에게 있는지라 가히 삼가하지 않으리요. 삼가 생각컨대
태조太祖께서 일찌기 큰 업을 개창하시고 열성列聖이
서로 이어 생민을 편케 길렀더니 나에 미쳐서는 안일에 빠져 군사의 일을 폐하고 강구하지 않았으므로 홍적紅賊이
침범하매 남으로 옮겨오게 되었도다. 매양 종사宗社를 생각하매 애통함을
어찌 견디리오. 이제 모든 장수를 나누어 보내어 군사를 합하여 적을 치게 하고 이에 정세운鄭世雲에게
절월節鉞을 주어 가서 그 군사를 독려하게 하여 명열을 좇고 좇지
않은 자를 상벌하게 하나니 각처의 군관軍官 군인軍人으로
감히 고의로 절제節制를 어기거나 또 치문馳聞을
막는 자가 있거던 군법 軍法으로써 종사從事하기를
허락한다. 아아 군사를 냄에 군률로써 함은 나라의 마땅히 먼저할 바이요 나라를 위하여 집을 잊어버림은 신하의
마땅히 급히 할 바이니 오직 너 사중士衆들은 나의 지극한 마음을
살필지어다”라고 하였다. 세운世雲이 도당都堂에
나아가 분연히 양언揚言하기를 “나는 심히 한미한 사람이라 나와 같은
사람이 재상宰相이 되었으니 나라가 어지러워짐은 당연한 일이라 죽령竹嶺
남쪽에 사는 사람으로서 임금을 따라간 자는 양식을 주지 말고 모두 종군하도록 함은 이 의론이 이미 정해졌거늘
이제 어찌 그리하지 않느냐. 기강紀綱이 이와 같으니 어찌 능히 난리를
제어하리오”하고 유숙柳淑에게 말하기를 “내가 내일에는 군사를 낼
것이니 그대는 가서 군사를 정열하라”하니 숙淑이 말하기를 “모든
군사기 이미 죽령竹嶺 대원大院에
이르렀다”하거늘 세운世雲이 말하기를 “군사가 만약 기일을 어기면
그대도 또한 죄책을 면하지 못하리라”하니 淑숙이 곧 가서 독촉하였다.
또 용鏞에게 말하기를 “이제 둘이 서로 적을 구경만 하기를 이같이
하면 누가 본받지 않겠느냐. 만약 적을 멸하지 못하면 비록 산골에 도망하여 숨더라도 어찌 살 수 있을것이며
나라를 구할 수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수시중守侍中 이암李●
이 말하기를 “지금 적이 닥쳐들어와 임금과 신하가 서울을 떠나니 천하天下의
웃음거리가 되고 삼한三韓의 수치가 되었는데 공이 먼저 대의大義를
선창하여 월鉞을 짚고 군사를 행하니 사직社稷이
다시 안정安定됨과 왕업王業의
중흥함은 이 일거一擧에 있음이라 오직 공은 힘쓸지어다. 우리 군신君臣은
주야晝夜로 공이 싸움에 이기고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세운世雲이
가매 뛰어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를 제수하니 위位가
이상二相 삼재三宰의 사이에
있었다. 왕王이 오달적 ●達赤
권천우權天祐를 보내어 의주衣酒를
사賜하니 세운世雲이 부주附奏하기를
“제장諸將이 적을 잡았다고 보고하더라도 먼저 상賞을
의논하시지 말며 신이 비록 적을 잡더라도 감히 자주 보고하여 역기驛騎를
번거롭게 하지 않고 크게 이긴 후에 장계를 갖추어 들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서경인西京人
고경高敬이 군전軍前에 와서
말하기를 “부민府民으로 적을 벗어나는 자가 대략 만인萬人이나
되니 청컨대 장수를 보내어 진압하고 구휼하소서”하거늘 세운世雲이
크게 즐거워하여 예부상서禮部尙書 이순李珣을
보내어 가서 구휼케 하고 제장諸將을 독촉하여 서울로 가게 하였다.
11년에 세운世雲이 제장諸將을
독촉하여 서울을 포위케 하고 자기는 물러나와 두솔원兜率院에 주둔하였다.
적을 평정하고 대장군大將軍 김한귀金漢貴·중랑장中郞將
김경金景을 보내어 노포露布를
받들어 행재行在에 나아가게 하니 (노포露布에)
말하기를 “일찌기 제세濟世할 마음이 간절하여 곁으로 준언俊彦을
구하고 공경으로 분곤分●
의 명을 받음에 성명聖明을 더럽힐까 두려워하나이다. 그윽히 듣건대
흥하고 쇠함은 운수가 있고 다스리고 어지러움은 다함이 없다 하오니 백성을 편안케 하는 요체는 적을 막는
것으로 어려움을 삼으니 대왕大王이 빈●을
버림은 능히 적인狄人의 핍박을 막지 못함이요 명황明皇이
촉蜀에 행차함은 갈구 ●狗의
침노를 제거하지 못함에서입니다. 적미赤眉를 소탕하고 유한劉漢이
다시 일어남과 황건黃巾을 파하여 조위曹魏가
통統을 이음은 다 오직 시운時運이요
홀로 인위人爲가 아닙니다. 지난해 중동仲冬을
당하여 하늘에 넘치는 경적勍敵을 만났으니 그 독을 방자히 함을 말하면
비록 시호豺虎라도 그와 같지 못할 것이요 그 군사를 행함을 보면
또한 손오孫吳도 항거하기 어려운지라 날로 스스로 방자하여지니 세상에
아무도 막지 못하였습니다. 승승장구乘勝長驅하여 이미 천하天下에
횡행하고 멀리 끌어 바로 들어오니 드디어 해동海東에 크게 떨쳤나이다.
성난 칼날을 가히 당할 수 없어 풍문風聞만 듣고라도 다 스스로 무너졌나이다.
백만百萬 정병이 문득 도성都城에
주둔하매 억조億兆 생민이 흩어져 도로道路에
유리하였나이다. 아아 백성의 괴로움이 도탄塗炭보다 심하오니 하물며
임금의 수레가 멀리 옮기시니 진실로 장상將相의 깊이 근심할 바입니다.
이에 구름같이 모인 군사를 들어서 드디어 개미같이 모이는 오랑캐를 쳤나이다. 사졸士卒은
솥물을 쏟는(건령建●)
형세를 얻었으매 적에 나아가는 것이 어찌 어려우며 완은頑 이 대[죽竹]를
쪼개는 혼魂이 되매 칼날을 맞아 문득 풀어졌나이다. 천하에 능히
제어하지 못함을 이에 제어하고 일세一世에 능히 베지 못함을 베었으니
고기는 가히 정중鼎中에 살며 토끼는 망외網外에
벗어나기 어렵나이다. 전단田單의 일기一奇가
어찌 족히 법되리요. 제갈諸葛의 팔진八陣을
가히 스승할 것이외다. 눈을 밟고 섬에 들어가니 이소李●가
채주蔡州의 땅을 취하고 물을 등져 진을 치니 한신韓信이
조벽趙壁의 기旗를 빼앗았나이다.
일은 비록 같지 않으나 의義는 진실로 한가지입니다. 신臣
옛적 기해년己亥年에 군사를 모아 일찍 조선朝鮮의
적을 소탕하고 두번째 적의 침략이 강함을 이긴 것은 다 신臣등의
공이 아니요 이것은 대개 삼가 전하殿下를 만나 용지勇智는
하늘이 주시고 성경聖敬은 날로 오르시와 멀리 휴풍休風을
펴매 삼대三代의 예악禮樂을
따르고 크게 문덕文德을 펴매 양계兩階에
간우干羽를 춤추었나이다. 효경梟●을
순치馴致하고 견양犬羊을 조복調伏
받음이 성화聖化에 관련되지 않음이 없으니 또한 모두가 지인至仁에
들어옴이니 이치理致의 자연自然은
비색否塞하면 다시 태평되는 것이오니 이 때가 중흥重興할
즈음이요 실로 갱시更始할 처음이 되는 것입니다. 신臣
등이 감히 다투어 응양鷹揚의 용맹을 떨쳐 회조會朝에
청명淸明을 이루며 이에 오변鰲玔의
정성을 펴고 서서 행재行在를 첨망瞻望하지
아니 하겠나이까”라고 하였다. 왕王이 기뻐하여 한귀漢貴에게
황금黃金 이십오량二十五兩
· 백帛 이필二匹을 사賜하고
곧 내섬사內詹事 이대두리李大豆里들
보내어 세운世雲에게 의주衣酒를
사賜하고 태후太后와 공주公主
또한 의주衣酒를 사賜하였는데 조금 후에 안우安祐
등等에게 살해된 바가 되었다. 홍언박洪彦博이
그 죽었음을 듣고 말하기를 “총병摠兵이 군사를 낼 때에 말과 용모가
심히 거만하였으니 그 화를 당함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첨의정승僉議政丞을
증贈하고 예禮로써 장사하고
또 호종扈從 및 수복收復한
공을 추록追錄하여 일등一等을
삼았다.
-출처 <高麗史고려사> 卷권
第一百十三 제113 列傳열전
卷권 第二十六 제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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